실미도
오래전 그당시 유행하던 주간지..아마도 선데이서울이던가...에서
눈이 번쩍 뜨일만한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실미도 무장군인 난동사건]이란 제목이었다.
두 페이지에 걸친 것이었는데,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기습사건 (김신조 사건) 이후
중앙정보부에서 그 보복부대를 만들어 주로 사형수 중심으로 부대원을 구성한 후
절벽에서 그냥 떨어뜨리는 등 실로 엄청난 훈련을 시켜오다가, 남북화해무드 등 사회환경 급변에 따라 상당한 차별을 받는데 대해 부대원들이 격분, 훈련장교 및 조교들을 야간에 전부 살해한 후
대통령 면담을 위해 버스를 탈취 서울시내로 진입하다가 군경과 총격전 중 자폭했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중정부장 (아마도 이후락씨인 듯)은 처음 발표문에서 `인천앞바다 무장공비 상륙`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무장군인`으로 정정했다고도 했다.
그 경위야 어떠하든 정말 가슴 아픈 슬픈 사건이며
무슨 일이든 숨기기와 책임회피에만 급급하던 대한민국 관료주의의 희생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국은 수십년이 지나도 전쟁포로 찾기, 참전군인 시신찾기 작업을 꾸준히 계속하여 애국심을 북돋우고
북한만 해도 침투.스파이활동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 그 공과를 철저히 따져 남은 가족들에게 상당한 혜택을 부여하며, 심지어 강릉잠수함사건 때와 같이 구성원들이 아예 집단자살을 택하게 하지 않던가.
난 그들이 진정 북한에 대한 충성심 때문으로만 자살을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서일 거라고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생포되었을 경우 가족에게 미칠 엄청난 불이익과, 죽음을 택했을 경우 가족에게 돌아갈 엄청난 혜택 사이에서의 선택은 누구에게나 명약관화하지 않겠는가.
애국심이란 것이 단순히 애국마인드 고취만으로 된다는 그런 편협한 사고에 우리 정책담당자들이 매여오진 않았는지.
수십년 지난 지금까지 북한의 탄광 등에서 고생하는 수만에 달하는 6.25전쟁포로를 나몰라라 하고, `북파스파이활동` 자체를 정책적으로 부인하기 위하여 그 많은 북파공작원들을 유령으로 취급해놓은 현실을 우리 정책당국은 무어라 변명할 것인지.
떳떳하지 못한 일이면 아예 하지 말아야 했을 것이며
만약 우리의 생존을 위한 필요악이었다면, 적어도 당당히 그들에게 상당하고도 마땅한 대우를 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래야만 유사시 (물론 전쟁이 없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우리가 훈련시킨 사람들이
우리와 우리가족 우리조국을 목숨을 걸고 지켜주지 않겠는가.
■ Synopsis
1968년 1월, 북한 특수부대 제 124군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한에 잠입했다. 북의 박정희 암살 지령으로 청와대로 향하던 31명 가운데 생포된 김신조는 생방송 TV에서 침투목적을 묻는 질문에 박정희 목따러 왔다고 말해 대한민국 전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같은 시간, 안찬은 연좌제에 걸려 폐인같은 삶을 살다가 그를 찾아온 실미도 북파공작대 교육대장인 재현의 뜻밖의 제안으로 사형을 면하고 실미도 특수부대로 호송된다.
정희구현 사회에서 쓰레기로 낙인찍힌 사형수, 무기수, 사회부적응자 등으로 구성된 실미도 부대원들 중에는 상필과 원희도 포함되어 있다. 재현은 이들에게 국가의 임무를 부여하는데, 그것은 바로 평양 주석궁을 폭파하고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오라는 대북 보복 차원의 초국가적 프로젝트였다.
국가를 위해 충성할 수 있다는 사명과 임무완수 이후 보장받을 새로운 삶을 그리며, 실미도 특수부대원 31인은 인간 병기로 거듭나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살인 훈련을 받는다. 외형적으로는 완벽한 인간 병기로 변해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의 막다른 삶을 이해하고 신뢰하며 그들만의 우정을 쌓아간다.
드디어 상부에서 작전 실행 명령이 떨어지고, 최상의 자신감으로 북을 향해 출정하던 그 날, 별안간 적전이 도중 취소되고 그들은 허탈한 정신적 공황상태를 겪으며 실미도로 복귀하게 된다. 그 이후 더 이상의 작전 명령 없이 계속해서 지옥 훈련만이 있을 뿐이다. 군기가 빠진 몇몇 훈련병들의 사고로 공개 처형까지 시행되면서 실미도 안의 분위기는 점점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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