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오래전..캠퍼스 화사한 어느 봄날 생각이 나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아득한애가 타는 그리움...
꽃처럼 살라 하셨나요 바람 분다 마음 졸이지 말며 고개 돌려 먼 길 바라보지도 말고 그저 화사한 꽃으로 서서 의연하게 살라 하셨나요 그리 하려고 죽을 힘 다했지요 어느 산기슭 나리꽃에 내려앉은 밤이슬만큼이나 아득한 그대를 차마 내 안에 가둘 수는 없었으니까요 허나, 바람 한 점 없는 들에서도 꽃잎은 흔들리더이다 꽃잎이 지고 계절 바뀌어도 그대 향한 그리움의 향기는 속수무책 짙어만 가더이다 끝내 스러진 풀잎에 누워 한 잎 한 잎 도려내는 이 아픔은 어찌해야 합니까 시들지 못해 연기처럼 타고 있는 지독한 이 그리움의 향기를 [박금숙]
[詩 배은미]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을 때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쳤을 때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하도 서러워 꼬박 며칠 밤을 가슴 쓸어 내리며 울어야 했을 때 그래도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살고 싶었을 때 어디로든 떠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어 짚시처럼 허공에 발을 내딛은 지난 몇달 동안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사람이 없었으며 사랑받고 싶어도 사랑해 줄 사람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필요했으며 필요한 누군가가 나의 사랑이어야 했다. 그립다는 것이 그래서 아프다는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을 혼자가 되고부터 알았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 그 모질게 내 뱉은 말조차 이제는 자신이 없다. 긴 아픔을 가진 사람은 안다. 그나마 사랑했기에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